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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딸이 추천하는 갤러리, 엄마와 나의 감성 데이트

by wonderhoho 2025. 5. 7.

서울 피크닉 갤러리 이미지

 

나는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게 서툰 사람이다. 특히 가족 앞에서는 더 그렇다. 딸이라는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사랑해’라는 말을 직접 꺼낸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다. 친구들이나 연인과의 데이트를 위한 시간은 아낌없이 내어 주면서 제대로 된 엄마와의 데이트는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봄, 나 자신에게 숙제를 하나 줬다. “엄마와 단둘이 갤러리 데이트를 하자. 말이 서툴면, 공간이 대신 말하게 하자.” 그렇게 나는 엄마와 함께 걷기에 적절하고, 말 대신 풍경이 마음을 풀어주는 감성 데이트 위한 장소를 골랐다. 이곳들은 예술을 담는 공간이자, 사진을 찍기에도 훌륭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하는 구조를 가진 특별한 장소들이다.

1.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 시간을 품은 건축과 감성의 공존

서울 종로에 위치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예술보다 공간이 먼저 말을 거는 미술관이다. 건축가 김수근의 독특한 붉은 벽돌 건축은 이미 하나의 작품이고, 그 틈 사이를 따라 걷다 보면 엄마의 발걸음도 천천히 느려진다. 이 공간은 특히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듯 전시가 이어지는 구조를 가진다. 사진, 회화, 설치미술이 층층이 구성되어 있고, 공간이 주는 정적인 분위기 덕분에 대화가 자연스럽게 묻어나온다. 나는 엄마가 어떤 작품 앞에 오래 서 있는지를 유심히 살핀다. 그게 우리가 가장 쉽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지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은 사진이 아름답게 나오는 공간이다. 통유리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벽돌이 만들어내는 질감은 엄마를 주인공으로 담기에 더없이 좋다. 정면을 바라보지 않아도, 옆모습만으로도 따뜻한 느낌이 드는 공간. 나는 엄마가 계단에 앉아 조용히 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는다. 우리 모녀의 관계도 그렇게, 말 없이 하나의 프레임에 담긴다.

2. 리움미술관 – 세대를 연결하는 고요한 클래식

용산에 위치한 리움미술관은 예술계 종사자인 나에게도 늘 ‘교과서 같은 공간’이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새로운 발견이 될 수 있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이 미술관은 세대 차이를 부드럽게 연결해주는 고리 같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고대 불상 앞에서 엄마는 그 익숙한 이미지에 편안함을 느끼고, 나는 그 형식미에 대해 설명을 덧붙인다. 반대로 현대미술관 전시실에서는 내가 먼저 느낀 바를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전한다. 대화의 주도권이 오가면서, 우리 둘은 서로의 세대와 언어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무엇보다 리움은 전시도 훌륭하지만 동선이 매우 안정적이다. 과도한 정보 없이도 관람이 가능하고, 공간 자체가 주는 고요함이 서로의 침묵을 편안하게 만든다. 뮤지엄 숍이나 카페에서의 시간도 추천한다. 커피 한 잔과 함께 방금 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처음엔 조용했던 엄마가 “그 그림 참 좋더라”는 말을 툭 던지는 순간이 온다.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한지,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3. 피크닉 –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감각적 공간

세 번째로 추천하고 싶은 곳은 퇴계로에 위치한 ‘피크닉(Picnic)’이다. 이곳은 기존의 미술관과는 전혀 다른 감성으로 접근한다. 비교적 젊은 층을 대상으로 큐레이션되지만, 세련된 전시 연출과 감각적인 공간 구성 덕분에 세대를 뛰어넘는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예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전시 디자인이 많다. 엄마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설치나 영상작업도 많지만, 시각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나는 이곳에서 엄마와 함께 예쁜 전시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감각적인 조명 아래에서 엄마의 미소를 담는다. 사진을 찍는 순간은 사실 대화의 연장이기도 하다. “여기 너무 예쁘다.” “이 색감 참 좋다.” 이런 간단한 문장이 우리 모녀 사이의 고리를 만든다. 그리고 그런 짧은 감탄이 쌓여, 결국엔 “다음에도 또 오자”라는 약속으로 연결된다.

또한 피크닉은 카페 공간이 굉장히 감각적이다. 전시 후, 천천히 음료를 마시며 우리가 함께 경험한 전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나에게는 전문적인 리뷰지만, 엄마에게는 그저 “너랑 있으니까 이런 데도 오네” 하는 소소한 만족일지 모른다. 그 소박한 말 한마디가, 하루 종일 기억에 남는다.

 

피크닉 갤러리 이미지

 

나의 결론 – 공간이 마음을 열게 한다

 

나는 아직도 엄마에게 마음을 다 보여주진 못했다. 무뚝뚝한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고, 일로 바쁜 나날 속에서 엄마는 늘 뒷순위였다. 하지만 갤러리에서 엄마와 걷고, 보고, 감탄하고, 사진을 찍는 그 시간만큼은 다르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내가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를 아신다. 그리고 나는 안다. 전시는 예술이 아니라,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걸. 이번 봄, 당신도 엄마와 데이트를 계획하고 있다면 미술관으로 향해보자. 그 공간이 대신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