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25년 4월 4일부터 7월 13일까지 개최되는 기획전 "우리를 바꾸는 다섯 가지 대화"는 감각과 공존,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전시다. 이 중 '목소리의 형태' 섹션은 음성과 몸짓, 언어와 소통의 경계를 예술로 녹여낸다. 특히, 음성 묘사를 듣고 조형물로 형상화하는 체험형 활동을 통해 감각과 인식의 전환을 유도한다. 이 글에서는 해당 섹션을 중심으로 작품의 구체적인 구성과 의도, 그리고 동시대 예술의 흐름 속에서 그 의미를 해석해 본다.
전시 개요와 ‘목소리의 형태’가 갖는 의미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내외 동시대 예술의 흐름을 통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기획 전시들을 꾸준히 선보이며 예술의 공공성과 사회적 역할을 확장해 왔다. 2025년 4월 4일부터 7월 13일까지 개최되는 “우리를 바꾸는 다섯 가지 대화” 전시는 그러한 맥락을 더욱 심화시킨 결과물이다. 이 전시는 감각, 시간, 정체성, 관계, 언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 관람자와의 ‘대화’를 시도하며, 예술작품이 단지 시각적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매개체로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케 한다는 관점을 담고 있다. 그중 ‘목소리의 형태’는 특히 언어와 소통의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구조를 해체하고, 이를 재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관람자에게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 섹션은 전형적인 음향 설치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작품의 음성 묘사를 듣고, 그로부터 떠오르는 이미지를 조형물로 표현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한다. 이러한 체험은 우리가 듣는 소리가 어떻게 개인의 인식과 상상 속에서 구체적 형태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르기에, 동일한 소리도 각자의 감각과 기억을 통해 전혀 다른 형태로 재탄생한다. 조형 활동을 통해 관람자는 단순히 수용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며, 감각이 형상으로 변화하는 그 과정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더불어 전시 공간에 놓인 다른 사람들의 조형물을 감상하며, 자신의 인식과 타인의 인식이 어떻게 다른지 혹은 유사한지를 비교하고 사유하는 기회도 제공된다. 이는 단지 미술적 체험을 넘어서, 언어가 형태로 이어지는 새로운 소통 방식, 즉 연결된 세계를 탐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감각과 상상이 만드는 조형적 소통
‘목소리의 형태’ 섹션의 중심은 시청각 매체에 의존하는 전시가 아니라, 청각적 인상을 시각적, 입체적 형태로 전환하는 조형 활동에 있다. 관람자는 준비된 공간에서 눈을 감고 작품을 묘사하는 음성을 들으며, 그 소리로부터 떠오르는 이미지를 점토, 철사, 종이 등 다양한 재료로 표현해 본다. 이는 언어의 구조가 감각 속에서 어떻게 해체되고 재구성되는지를 물리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이며, 개인의 감각 체계를 깊이 있게 자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활동은 미술관이 예술작품을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 관람자 스스로가 ‘형상화된 언어’를 창작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만든다. 전시장에 놓인 타인의 조형물은 각기 다른 삶의 배경과 감각의 층위를 담고 있어, 관람자에게 또 다른 이해의 폭을 제공한다. 이는 곧 하나의 주제에 대해 무수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하며, 다양성의 가치를 실감 나게 전달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조형 활동이 특정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각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표현해 보는 과정 그 자체에 중점을 둔다는 점이다. 음성이라는 비물질적 매체가 손끝에서 물리적 형태로 변모하는 과정은, 단순한 예술체험을 넘어서 인간의 인지 과정 자체를 탐색하는 지점으로 확장된다. 이를 통해 ‘목소리’는 더 이상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무수한 감각적 변화를 이끄는 매개체가 된다.
연결된 세계, 그리고 형태가 된 언어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목소리’를 주제로 하면서도 그것을 단지 듣는 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참여를 통해 감각을 조형화하고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특히 ‘목소리의 형태’ 섹션은 음향을 매개로 한 전시를 뛰어넘어, 관람자의 창조성과 감각의 주체성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조형 활동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재정의한다. 이러한 체험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며, 각자의 감각이 어떤 식으로 현실화되는지를 탐색하게 만든다. 또한 전시에 참여한 사람들과의 감각적 차이를 비교하고 감상함으로써, 예술을 통한 소통이 언어를 넘어서 가능하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언어가 텍스트나 음성에만 국한되지 않고, 형상과 조형, 공간과 관계 속에서도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다는 점을 체감하게 된다. 결국 이번 전시가 보여주는 ‘연결된 세계’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들이 예술이라는 다리 위에서 만나고 이어지는 공간이다.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첫걸음이며, 소리 없는 언어로 서로를 감각하는 새로운 방식의 시작이기도 하다. 예술은 이처럼, 말보다 더 깊고 넓은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